40년 전 나는 양평의 조그만 교회에 들러, 그곳에서 있었던 부흥 성회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말씀을 나누고 중보기도를 하고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돌아와 고시원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첫날은 폭포수 아래에서 물 세례를 받고 깨끗함을 얻었고, 다음날은 벽이 무너지면서 찬란한 빛의 축복을 받았다. 그때는 잘 몰랐다. 다음날 부흥회 강사 목사님께 이런 꿈 이야기를 드렸더니 ‘이번 성회를 통해 한 영혼이라도 구했으면 했는데 학생이 그 한 영혼이군요’ 하고 기뻐해 주셨다. 나는 그 길로 서원 했었다. 판 검사를 거쳐 60 세가 되면 부흥 강사님과 같은 목사가 되겠다고….
이제 60 세가 되어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고서야 꿈에서 본 빛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내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이다(고후 4:6). 그래서 영의 눈, 마음의 눈을 뜨게 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 같이 내 인생의 전부를 예수님께서 동행해 주셨는데도 모르고 살았다.
막달라 마리아도 빈 무덤에 가서 예수님을 찾았으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녀와 함께 있었다. 다만 그녀가 몰라보았을 뿐이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 20:15)
율법을 잘 안다고 하는 서기관 들과 바리새인 들도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도 출애굽 광야시절을 기념하여 초막절 기간 동안 성전 뜰에 큰 등불을 켜 놓고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념하고 있다. 그들이 종교를 의식으로만 삼고 있으니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신 염소들이니 믿지 아니하는 것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르켜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눅 24:19)라고 말했다. 머리로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을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여 빵을 떼어 나눌 때 그들의 눈이 열리고 마음의 눈이 열려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예수님을 따라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작은 교회, 가난한 이웃과 함께 주신 은혜를 나눌 때 다시 한 번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목사님,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뵐 날을 고대합니다. 미란 마이어스
"내 인생의 전부를 예수님께서 동행해 주셨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