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학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아시겠지만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연금이 1/2로 줄어듭니다"고 통보한다.
성경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이라고 하고,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 하고….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마 5:10-11)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을 선택하고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버리면 핍박을 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나 일제 시대에는 몰라도 버젓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예수의 이름 때문에 더 이상 핍박을 받지는 않으니 참 다행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사업이 부도 나고, 암 말기 사형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일 때, 자녀가 속을 썩일 때, 억울하게 고소되고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예수님을 포기하고 싶을 경우가 있다.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 이러한 고통이 왜 있는지, 나의 간절한 기도를 왜 안 들어 주시는 지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워 예수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therefore) 예수님을 선택하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예수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내가 주인이 되어 해결해 보려고 할 때 문제는 커지지만 내려놓고 예수님을 붙잡고 있으면 문제는 작아진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고 권능을 주시기 때문이다. 때가 차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다.
예수님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면서 예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내 뜻대로 살 것인지.
예수님을 포기하면 육신은 살지 모르나 영은 죽을 것이요, 예수님을 선택하면 육신은 죽을지 모르나 영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나 또한 형사 고발이 되면서 육신은 죽었다. 일찍 죽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뒤늦게 육신이 죽을 때 후회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먼저 육신을 죽이고 영으로 사는 삶이 하늘나라에 복을 쌓는 길이기 때문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영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오셨다. 하늘나라의 비밀이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다.(골 1:27)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가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영생을 얻고 거듭난다.
무엇보다도 나의 육을 죽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더 이상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고 억울해 하고 화를 낼 이유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이대로의 모습으로 족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남은 인생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던, 함께해 준 고마운 분들에게 찾아가 감사를 표시하고, 나보다 어려운 분들에게 찾아가 나누어 주고, 병든 자, 외로운 자에게 다가가 시간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 상처 받은 치유 자로 오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복을 쌓는 길이다. 이 세상은 잠시 왔다가 가는 순례의 길이다. 하늘나라 문턱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남은 시험 장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하나님은 참 놀라우시다.
한 때는 나에게 내려놓음의 두려움을 주시더니 이제는 그 두려움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시다.
"한때는 나에게 내려놓음의 두려움을 주시더니..."
매순간 부딪히는 상황가운데 내려놓아야 하는 일은
자신과의 힘든 싸움이고 많이 아파해야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오직 은혜로만 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게 됩니다.
함부로 무례하게 지껄이는 혀를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상석의 자리에서 오해로 인해 휘둘림을 당하고 자리가 흔들릴때도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처럼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나는 이미 너무도 받은게 많은 사람인데...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었던 사람인데... 하고,
받은바 은혜들을 추억하며
예수님의 생명안에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 하나만 붙잡고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례한 혀는 소화시킬때 많이 아픕니다.
그럴때마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자신을 기억하고 내려놓음에 대해 묵상합니다.🌿